| 제목: 일자리를 나누자(박석운/노동정책연구소장/한겨레21 205호/98.4.27) |
** 이 글은 박석운 노동정책연구소장이 한겨레 21 제 205호에 게재되었
던 원문입니다. **
박석운(노동정책연구소장)
최근 국내 최대의 자동차생산 업체인 현대자동차가 전체 종업원의 20%
에 달하는 9,000-10,000명의 인원을 줄인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울산은
물론 전국적으로 일파만파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작년말의 경제파탄
으로 IMF구제금융시대로 접어든 이후 급증하고 있던 실업사태가, 드디
어는 주요 대기업의 생산직노동자들까지 실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면서, 이제 본격적인 증폭단계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자동차산업은 워낙 전후방 연관효과가 큰 산업인지라 원청 회사가 생
산을 줄이고 감원하게 되면 하청,협력회사들도 연쇄적으로 그이상의 생
산감축과 감원 심하게는 도산으로 내몰리게 되는 연쇄 실업사태가 나게
된다. 만일 대기업에서 너도나도 이런 방식의 정리해고를 진짜로 실행
에 옮긴다면, 이미 150만명에 이르는 실업자수가 단번에 200만명을 훌
쩍 넘어서고 순식간에 실업자 300만명 시대, 아니 실업자 400만,500만
시대(생각하기도 끔찍하지만)로 접어들게 되는 것도 배제할 수 없는 상
황이다..
회사측의 충격적인 감원방침 발표에 대해 조합원수가 35,000명에 달하
는 국내최대의 제조업 노조인 현대자동차노조는 근로시간단축을 축으로
한 일자리나누기를 회사측에 제안하는 한편으로 회사측의 일방적인 정
리해고 강행에 대해서는 "총파업은 물론이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
해서 최후의 일인까지 끝까지" 단호하게 투쟁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평상시의 주 56시간 근무제를 주 38시간 근무제로 근
로시간을 약 30% 정도 단축시키면 정리해고하지 않고도 30%정도 감축된
회사측의 98년 생산목표에 적정한 량의 노동력 수준이 된다는 것이다.
노조는 또 현재의 주야 10시간씩 맞교대 근무하는 방식에서 일본의 도
요다나 독일처럼 주간 연속 2교대 근무제로 바꾸면 노동자의 건강권도
보장되고 또한 이를 바탕으로 품질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제 공은 회사쪽으로 넘어간 셈이다. 노조쪽과 협의하여 일자리나누
기방식으로 IMF파도를 함께 넘어가는 방식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우선
손쉬운 방법으로 집단적인 정리해고를 강행하다가 노조의 강력한 저항
을 불러일으키면서 쌍방이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입고 좌초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실업대란 시대가 되면서 실업문제는 우리 사회의 핵심 과제가 되었고,
정부에서도 연일 실업대책을 발표하고 있는 바 최근의 실업대책과 관
련하여 한두가지 짚고자 한다.
먼저 적극적 실업예방정책이 긴요하다.
정부의 실업대책에는 고용안정 지원대책이나 일자리 창출대책 및 직업
훈련 확대책 등이 일부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실직자 생계보
호에 집중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 정리해고제 특히 인수,합병시 정
리해고제를 법제화하고 또한 파견근로법을 제정하는 한편 사용자측의
무리한 집단감원이나 부당노동행위를 방임하는 등 사실상 정리해고촉진
적,실업조장적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식의 실업대책이라고나 할까, 한쪽에서는 마구잡이식
감원으로 초래되는 대량실업을 방임하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취
로사업 수준의 실직자 생계보호 대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다.
그러나 실업대책은 사후적 실업대책 즉 이미 실업자가 되어 버린 노동
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또한 실직기간 동안의 생계보호를 해나
가는 방식의 대책도 중요하지만, 적극적으로 기존의 고용을 유지하고
실업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 즉 실업예방정책이 사후적 실업대책 못지않
게 중요하다는 점은 매우 강조되어야 한다.
실업을 적극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나
누기가 적극적으로 장려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 법정 근로시간의 단축
이 필수적 정책수단이 될 것이다. 그외에도 이미 정부당국도 준비하고
있지만 태부족일 고용안정 지원사업을 내실화하고 또한 대대적으로 확
충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음으로 정리해고와 임금비용 삭감형 일변도의 구조조정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
현재 진행되는 기업 구조조정은 하나같이 대량 정리해고나 임금동결
또는 삭감을 주요 축으로 하여 진행되고 있는데 이런 경향은 한국경제
의 회복을 위해서도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현재 감원의 주요 원인이
소비부진으로 인한 생산감축때문에 발생하고 있는데, 이런 상태에서 또
다시 임금비용감축으로만 나아가게 된다면 총소비가 급감하면서 또다시
생산감축과 정리해고의 악순환으로 치닫게 되고 이는 곧 대공황의 늪에
빠지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구조조정을 말하면 으례 정리해고와 임금비용삭감을 의미하는 것
처럼 되어 버렸지만, 사실 기업구조조정은 이런 방식이 아닌 방식으로
도 가능하다. IMF체제를 성공적으로 졸업했다는 멕시코에서도 임금동결
이나 삭감이 아닌 매년 10%내외의 임금을 인상시키는 사회적 합의를 하
여 경제난국을 극복한 사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 96년기준으로 우리나라 제조업에 있어서 제조원가중 노무비 비율이
평균 10.8%에 불과한데, 금융비용은 매출액의 5.6%에 달하고 있다. 그
런데 IMF시대에 들면서 금리가 2배정도로 폭등했으니 금융비용도 적어
도 2배 이상 된다고 치면 매출액의 11.2%정도될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
다. '불로소득'인 이자총액이 전국의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 일해서 받
는 임금 총액보다 더 많은 상태에서 구조조정의 촛점은 금융비용의 절
감에 맞춰져야 마땅하다. 금리인하와 차입금을 줄이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서라도 금융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또한 전반적 개혁을 통해 준
조세나 고지대 등 비임금비용을 절감하는 쪽으로 구조조정해 나가는 방
법이, 노동자들의 격렬한 반발을 초래하고 그래서 자칫하면 공멸의 길
로 접어드는 기존의 방식보다 현명한 방식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경제 난국 시대, 고용 대란 시대에 이 심각한 문제를 경영진의 고독한
결정에만 맡겨 놓을 일이 아니라, 이를 견제하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만들고, 그리하여 함께 고통을 나누고 함께 난국을 극복해 나가기 위한
국민적 의지를 모으는 것이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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