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나!활동가> 그 어떤 색깔도 아름답지 않은 색깔은 없다(열린세상 19호/2003.5) |
그 어떤 색깔도
아름답지 않은 색깔은 없다.
- 외국인노동자 자녀와 함께 하는 '어린이날 무지개축제를 마치고
김 미선
외국인노동자의료공제회 사무처장
1. "우리 엄마는 외국인노동자입니다" - 사소한 문제의식에 대한 답을 구하다
올해 초등학교 입학한 아이가 몇 년 전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가족소개를 할 때였단다. "우리 아빠는 ooo입니다. 우리 엄마는 ooo입니다." 이름뿐 아니라 직업까지 소개하는 시간에 아이는 제 딴엔 엄마가 하는 일을 소개한다는 게 그만 "우리 엄마는 외국인노동자입니다"였다나?
아이가 커가면서 나름대로의 제안사항이 자꾸만 늘어난다. "엄마 외국인노동자 그만 하고 O마트에서 계산하는 거 해", "엄만 의료공제회 일이 좋아? 재밌어?" 심지어는 "엄만 과일 중에서 뭐가 제일 좋아?" 라는 질문에 "사과"라고 하자, "그럼 사과장수 해, 외국인노동자 하지 말고..." 나중에는 "엄마, 그럼 외국인노동자 제과점 차려서 외국인노동자들한테 빵 줘".
다른 아이들보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을 자주 대하지만 오히려 엄마의 시간을 빼앗는 사람들로 인식되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어쩌면 다른 실무자들도 비슷한 고민에 빠져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이들끼리라도 우선 서로 어울려 놀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 속에 함께 살아가는 외국인들 특별히 또래친구들과 자연스레 만나고 또 어울릴 수 있다면 서로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벽은 점차 허물어지지 않을까?
2. 우리 모두의 아이들 - 외국인노동자 2세에게 관심이 확대되다
의료공제회가 본격 가동되면서 가입 후 3개월 이상 된 회원의 수술, 입원시 지원하는 의료비 지원항목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바로 일반 질병보다 임신, 출산에 대한 지원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이었다. 2000년 전체 의료비 지원 113건 중 27건의 출산 지원 건수(24%)가 2001년도엔 279건 중 88건(31%)으로, 2002년에는 332건 중 124건(37%)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의 많은 수가 본국으로 돌려 보내지고 있다. 맞벌이해야 하는 부부들에게 자녀양육이란 커다란 짐이기에...그렇게 남의 땅에서 태어난 아이들, 또 부모 와 떨어져 본국으로 돌려보내진 아이들의 상황이 궁금했다. 또한 이곳에서 함께 자라고 있는 아이들은 건강한지? 구김살 없이 유소년기를 보내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인들끼리도 조금만 피부색이 짙으면 놀려대는 것이 일반화된 현상이니, 외국인노동자 자녀들이 쉽게 놀림감이 되는 것은 상상하는데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늘어나는 출산지원 사례에 주목하면서 기존의 외국인이주노동자 1세대에 대한 관심은 점차 그 자녀들에게까지 확대되었다. 올해 의료공제회에서는 이러한 관심을 구체화하여 외국인노동자 자녀 건강검진과 어린이축제를 기획하게 되었다. 어린이날 행사의 주요 컨셉은 무지개처럼 서로 다른 색깔이 조화를 이루어내듯 외국인노동자 자녀든 한국어린이든 차별과 소외 없이 밝고 건강한 미래를 가꾸어가도록 서로 만남과 어울림의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우리의 이웃이라면 이웃의 아이는 바로 함께 관심하고 사랑해야 할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5월 5일 한강시민공원에서 몽골,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중국, 말리 등에서 온 어린이들과 국제결혼 가정, 공부방 어린이를 포함해 약 100여 명의 어린이와 가족, 상담소 실무자, 자원봉사자 등 총 300여 명이 함께 한 무지개축제가 열리게 되었다.
3. 모두가 함께 만든 어린이날 무지개축제
축제 당일 오색 물감을 칠한 손도장 찍기를 시작으로 행사장 곳곳에서는 장애물경기, 딱지치기, 페이스페인팅, 윷놀이, 투호놀이, 캐리컬쳐 그리기, 한복입고 사진 찍기, 솜사탕 만들기 등 어린이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놀이가 다양하게 펼쳐졌다. 이날 의료공제회에서 마련한 어린이 건강검진은 소아과, 치과검진과 함께 좋은 식습관 들이기, 충치예방을 위한 올바른 칫솔질 등 건강교육도 함께 진행되었다. 이어지는 순서에서는 아이들 놀이 외에도 엄마, 아빠들이 참여한 미니올림픽으로 평소 여유 있게 휴일을 즐길 수 없었던 이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주기도 했다.
5월 5일은 날씨가 무척 더워 행사 진행팀에서 준비한 물이 오전 일찌감치 동이나 연신 생수 사 나르기에 바빴던 하루이기도 했다. 날씨도 날씨였지만 행사장이 전철역에서 멀어 아침부터 참가자는 물론 자원봉사자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뙤약볕 아래 구석구석마다에서 맡은 바 자기역할을 충실히 해준 수많은 자원봉사자들, 의정부, 일산, 마석, 수원, 성남, 용인 등 먼 곳에서 또 서울 각지의 가까운 곳에서 이른 아침부터 외국인가정과 어린이들을 행사장으로 안내해온 각 지역 상담소 실무진들, 정작 가족과의 시간은 뒤로 미룬 채 어린이 건강검진에 땀 흘린 의료진들...모두가 이번 행사를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든 보이지 않는 손들이었다. 이 날 행사를 더욱 뜻깊게 만든 건 행사장 한켠에서 진행된 "이라크어린이에게 의약품 보내기" 성금모금이었다. 어른들의 이기심과 강대국이 벌인 "충격과 공포"의 전쟁으로 병을 얻고 죽어 가는 어린이들을 생각하며, 앞으로 이 어린이들이 세울 세상은 모두가 자기 색깔만 내세우지 않고 어울려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무지개빛 세상이기를 희망해보았다. 그 어떤 색깔도 아름답지 않은 색깔은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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